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왜교성 전투 (문단 편집) == 대중매체 == || [youtube(tPA-BqaVRuU)] || || [youtube(Ft8s_E9-4Kk)] || [[불멸의 이순신]]에서는 1회, 99회 ~ 100회에서 나오는데, 촬영을 초기에 해서인지 전투 신이 확실히 실감이 나며 전투의 긴장감도 느껴지는 것이 공을 들여 찍은 티가 난다.[* 촬영 때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한 전투라고 한다.] 여기서 [[고니시 유키나가]]는 조선인 포로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 [[이순신]]을 제거하려 했지만 처음에 살려달라며 소리지르던 포로들이 이순신이 공격을 주저하다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꿔 '차라리 짐은 되지 말자'며 일본군에게 반항하면서 자신의 대장선이 공격당해 바닷물에 빠지는 굴욕을 당했다. 전투 후 조선 수군은 전체적으로 쓸쓸한 표정을 짓는 것이 승리자의 모습과는 영 거리가 멀다.[* 일본군의 피해가 더 컸지만 결과적으로 성을 점령하지는 못했다. 일이 이 모양이 된 이유는 전적으로 뇌물에 넘어간 유정의 우유부단함과 공명심에 눈이 먼 진린의 독단 때문인데, 내레이션에서는 피해만 설명해 주었을 뿐이다. 다만 전투과정내내 진린이 공을 탐내는 모습과 유정이 공격을 거부하는 모습이 나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었다.] > 1598년(무술년) 10월 3일. 조·명 연합군은 [[고니시 유키나가]]가 농성 중이던 [[순천왜성|순천 왜교성]]을 공격했다. > '''그러나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매수된 명나라 육군 제독 [[유정(명나라)|유정]]은 협공 약속을 어겼고,''' 이에 수군 단독으로 전투를 치렀다. > 이 전투에서 명나라 전선 30여 척이 격침되고, 명 수군 2천여 명이 전사를 했으며, > 조선 수군 역시 130여 명의 전상자를 냈으니, [[정유재란|조일 전쟁]] 막바지에 입은 의외의 피해였다. 99회 ~ 100회는 1회와 대체로 비슷했으나 1회 방영 이후 설정 변경 등으로 인해 대사, 장면, BGM이 1회와는 다르게 나왔으며 새로 촬영한 일부 장면들이 추가되었다. 본작에서 감정적인 성격으로 묘사된 [[이영남]]은 황세득을 구하러 가겠다고 난리를 치며 결국 억지로 황세득을 구하러 가려다가 이순신의 지휘봉에 뒤통수를 맞고 기절하는데, 이순신 역시 어쩔 수 없이 황세득을 버리고 가면서 눈을 감고 부들부들 떤다. 황세득은 이순신의 친척(처종형)이기에 이영남보다 상심이 크면 컸지 작을 리는 없었을 것이며, [[권준]]이 위로할 때는 전장에서 전사한 아쉬운 목숨이 어찌 그 한 사람 뿐이겠느냐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,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. [[역사에의 초대 임진왜란]]에서는 [[고니시 유키나가]]가 진린에게 뇌물을 줘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지만 그것을 충무공 이순신이 차단해버린다. 이에 빡친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나라 포로 2명의 손목 4개를 베어 진린에게 보냈다. 이후 [[노량 해전]]으로 이어지고 노량 해전이 벌어지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망쳤다. 고니시 유키나가는 말을 베어서 식량으로 썼기 때문에 [[아시가루]]들과 똑같이 뛰어서 도망쳤다. [[분류:임진왜란/전투]][[분류:임진왜란/해전]] [include(틀:포크됨2, title=왜교성 전투, d=2022-07-08 16:31:31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